[목요논단]'문화예술육성사업' 자금원도 우리 세금이다
입력날짜 : 2009. 12.17. 00:00:00
올해는 세밑에 바짝 다다랐어도 아쉬워할 여유조차 없다. 올 한 해가 없는 서민에게는 너무나 강팔져서 살아내기가 여간 힘겹기 이를 데 없었던 탓일까, 뒤돌아보고 싶지 않다, 가슴이 울부짖는다.
살기 힘들어 버리고 싶었던 지긋지긋한 2009년을 검질긴 영원의 시간으로 친친 묶어 세월 저 너머로 휘이 던져버리는 것으로 끝을 내고 싶다. 그리고는 아직은 미지의 신천지처럼, 때가 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신비로움으로 충만한 2010년을 어서 맞이하고 싶다며 학수고대하기에 이른다. 원대한 희망을 품고 새 빛, 새 날을 고대하자고 이번에는 마음이 꼬드긴다. 자, 저 먼데서 이리로 한 달음에 달려오는 첫 햇귀를 여명쯤에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으로 삶을 계속하자라고.
정말 그럴까? 2010년은 다를까?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이니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자중자애 하도록 다독이며 습관처럼 TV를 켰는데, 아, 국회채널이었다. 그런데 한 국회의원이 새해 예산안에 문화예술 부문의 어디에,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를 질의하고 있었다! 희망스럽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문화예술이 중흥해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원론을 깔고 관련분야의 예산편성을 점검하는 그 국회의원에게 박수를 힘껏 쳤다. 명색이 예술인의 범주에 들고 보니 챙겨주는 것 같아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부자 감세니 서민 보호 정책이니 세수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을 보면서 문득 나라살림의 종자돈이 되는 나의 세금을 생각해 봤다.
가난한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서도 알게 모르게 세금은 정확하게 빠져 나간다. 예컨대 연구비며 원고료에서 징수되는 직접세는 목록이라도 있다. 라면 한 봉지를 사도 물건 값에 포함되어 납부해야만 하는 간접세는 도대체 얼마를 냈는지 조차 모르게 낸 세금이다. 그리고 세금도 아니면서 저축도 아닌 건강보험료처럼 무슨 큰 병이라도 걸렸다면 어떡하나 두려워 떨면서 그저 자리 져 눕지 않으면 버티는 이 공으로 병원에 한 번 가지 않아도 꼬박꼬박 강제 징수 당하는 것도 있다. 그 뿐인가. 푼돈이라도 아끼려고 조조할인하는 영화티켓을 사고 아침부터 영화관엘 가도 세금은 기금까지 업어 이중으로 여지없이 물려진다.
그 모든 것을 합쳐봐야 내가 납부하는 세금액수는 악어의 눈물만도 못 되는 아주 적은 액수이다.
하기는 그 액수의 적고 많음의 기준이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돈의 크기이다. 없는 이에게는 이즈음 들어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쓰임새나 모양새나 다 새털처럼 가벼워 사라질 위기에 처한 10원짜리 고린 동전도 큰 돈이다.
아무리 크고 긴 강도 발원지에서는 옹달샘이거나 실개천으로 시작하지 않는가. 물 한 방울을 이루기에도 부족한 세금일망정 대한민국 국민이 5천만에 이르니 이들도 나와 같이 내는 족족 국고에 모일 것이고, 비로소 차고 넘쳐 강을 이루어 도도하게 흐르는 동안 나라와 지역의 살림, 즉 우리들의 실질적인 삶의 근간을 조성한다는 희망스런 국민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세금을 내었다.
그 나라의 문화예술정책과 그 실행 정도로 미뤄 봐 국민의 삶의 질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이론은 사실로 굳어진지 오래다. 내년의 '제주문화예술육성사업'의 배분을 보면 제주도민의 삶의 척도를 잴 수 있을 터이니, 눈을 부라리고 지켜 볼 일이다. 이미 낸 세금을 적정하게 돌려받아 유용하게 쓰는 것도 국민의 도리이다.
<한림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