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cbs칼럼09714
제주도가 지켜야할 것들 6. 모둠
한 림 화<작가>
제주도가 망망대해 한 바다 가운데 외롭게 자리 잡았는데도 섬 주민들이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를 창출하고 향유하며 잘 살아온 이면에는 함께 살아가려는 공동체 사회의 기반이 되는 시스템이 갖추어진 덕분이라고 봅니다.
예전 제주의 마을에는 ‘모둠’ 이란 경제공동체 살림살이가 있어 누구나 그에 따른 의무를 다하고 그리고 그 덕을 봤습니다. 모둠이란 말 그대로 경제적인 기반이 될 무엇을 십시일반으로 한 데 모으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모둠 시스템이 가동하면 경제적으로 안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아이들 주전부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 동네 아이들이 각자가 고구마 몇 개씩을 가져오면 큰 가마솥 하나가 되고, 그걸 쪄 나누면 마을 아이들 모두 주전부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한약재로 쓰이는 야생초 ‘산마’의 뿌리를 한 두 줌씩 캐어 한 데 모아 팔아서 다 함께 놀 축구공도 샀습니다. 또한 마을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온갖 모둠을 하여 기금을 만들고는 야학을 열기도 하고 마을문고도 설치하였습니다. 제주해녀들이 이른 봄 채취한 미역을 모둠으로 모아 마을의 공적기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모둠은 마을 안길을 닦는 재원으로도 쓰이고, 마을 일을 도맡아 하는 이장의 거마비가 되기도 했고, 학교도 짓고 마을회관도 짓는, 소위 지역인프라를 구축하는 종자돈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루 세끼 밥을 지을 때마다 부뚜막에 앉힌 ‘조냥대바지’에 한 숟가락씩 덜어 모은 쌀 모둠은 마을의 방앗간이며 공동목장을 마련하는 등 큰 재원으로 환원한 결과,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마을재산으로 비축되어 지금도 후손들이 덕을 입는다고 합니다. 접이 일종의 사적 용도의 저축제도이며 비상대책 기구라면 모둠은 공적용도의 재원을 확보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둠이 재원 확보의 수단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내면에는 공동체가 한 운명이라는 일체감이 있었습니다. 뿐 아니라 다함께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자는 대의명분이 함의(含意)되어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를 격려하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둠과 같은 마을공동체의 미덕이 잘 갖추어진 이런 상생의 원리가 작용하는 시스템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한 마을, 한 세대를 하나로 묶고 아우르던 공동체 정신도 차츰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진정 모둠과 같은 제주 섬 생활공동체의 미덕을 오늘도 잃고 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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