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칼럼 [목요논단]민심은 천심이다
입력날짜 : 2009. 06.18. 00:00:00
본디 역사가 정사위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편협된 소견이다. 예컨대, 지구상의 그 누구도 다 아는 유대민족의 나라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를 규명하고 있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탄생한지는 60여 년에 불과한 신생국이지만 하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에다 그 나라의 역사가 사실은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기원전과 후로 길게 이어졌음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예수시대에 로마에 의해 그 나라가 멸망하게 된 이면에 유대지도자들의 협력이 있었음이 드러나는 문건은 정사가 아닌 유대민족의 전설과 신화 그리고 개인기록물들이다.'유대전쟁사(The Jewish War)'와 '유대인의 고대역사(Jewish Antiquities)' 등을 집필하여 '요세프스의 문서'로 후에 더욱 유명해진 제사장이며 역사학자이며 집필가로 당대 유대민족의 지도자 중에서 요세프스(Flavius Josephus)를 예로 들자면, 망해가는 나라와 민족을 일으켜 세우려고 애쓴 인물로 백성으로부터 추앙받았다고 역사는 새겨놨다. 그러나 2000년 후 그는 로마에 협력하여 나라와 민족을 멸망시킨 배신자임이 밝혀지게 된다. 그 증거 자료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정복사와 산상요새 마사다에 얽힌 유대민족의 신화 등 구전자료였다.
이 시각 제주자치도, 현 제주도지사에 대한 도민의 불신임이랄 수 있는 주민소환 요구 청구에 동참한 지사 투표권자의 수가 5만명을 일찌감치 넘어서 6만명에 육박하였다고 한다. 일찍이 이와 같은 상황을 경고해 이르기를, '민심은 천심이다'라고 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민의를 무시할 수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결과이다.
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널리 알려 사회에 기여하기를 하늘이 내린 일인양 평생 해오고 있는 박석무 선생이 며칠 전 우연히 돌린 편지에서 정약용은 이러한 일이 애시당초 벌어지지 않도록 공직자의 복무의식을 다잡는 조언을 했음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목민관은 네 가지를 두려워해야 한다. 아래로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고, 위로는 대성(臺省 : 요즘의 감찰기관 즉 검찰이나 감사원)을 두려워해야 한다. 또 그 위로는 조정(朝廷 : 요즘의 청와대)을 두려워하고 또 그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 (牧民者有四畏 下畏民 上畏臺省 又上而畏朝廷 又上而畏天)"
이 인용구는 다산이 그의 절친한 친구의 아들이 목민관으로 부임하게 되자 그가 어떤 자세로 그 직에 복무해야 하는 지를 손수 적어 준 것이라고 하였다. 뿐 아니라 이 글에 대하여 차근하게 해설도 붙였다고 한다. "백성이나 하늘은 항상 목민관의 곁에 붙어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잘못을 들키면 끝장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라는 대목에서는 다산의 올곧은 충고에 감복하게 된다.
이 상황이 되고 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식상하기 까지 한 옛 사람의 사회의식을 반영한 속담이나 격언이 구구절절 되살아나 마음을 매질한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곱다'라고, 소위 사회지도층이 자신의 자리에서 매우 투명하게 '노블리스 오불리제'를 수행해야함을 단적으로 지적한 말마디에서는 그 사회가 혼탁해진 책임이 누구에게, 어디에 있는지를 확연하게 적시하여 간담이 서늘하다. 또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면서 속이 시커먼 이와 가깝게 지내는 이들에게 그 혼탁함에 물들지 않도록 경계심을 고취하다 못해 아예 격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 주거나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얼버무림에 대하여 가차 없는 경고에도 이를 무시하고 하루하루를 그냥 '땜빵질'하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민초의 삶이 한없이 부끄럽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고 이르지 않았던가, 즈려밟아도 무방할 것 같았던 무지렁이들이 반사작용처럼 작은 몸부림을 치며 겨우 일어나나 싶었는데 보라! 이제 용틀임을 하고 있으니 옛말 하나도 그른 데 없다. 민의는 하늘에 닿았을 뿐 아니라 하늘에 대고 역사를 기록한다.
<한림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