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세상이 다 우리를 속이지는 않을 것이기에
입력날짜 : 2007. 12.10. 00:00:00
지구의 온난화는 제주의 가을을 앗아가 버렸다고, 초가을 '인디언 썸머'가 며칠 찾아들었을 때 두루 걱정들을 하였다. 가을이면 기온이 떨어져야 하는데 왜 여름처럼 뜨거운 날씨냐 하는 의구심을 계절의 변화에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알맞은 온도와 청아한 햇살을 되찾은 제주의 늦가을은 삼라만상의 온갖 것을 한껏 치장하여 섬 전체가 만추의 서정 속에 펼쳐 앉도록 본분을 다하였다. 오랜만에 오만가지 색깔로 저마다 깔 먹은 낙엽이 꽃처럼 고와 보는 섬사람 마음을 유정하게 추슬렀다.
그에 더하여 대선 주자로 나선 열두 분과 제주도 교육감 후보들이 유권자들을 향하여 차려내는 공약의 진수성찬을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들으면서 괜시리 희망에 부풀어 꿈꾸는 세상을 둥둥 떠다니기도 한다. 내건 공약마다 다들 우리네 삶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들이어서 무엇은 쳐내고 무엇은 더 돋우라고 바라는 그 자체가 우매하게 여겨질 만치 구미가 당기는 것들이다. 누구를 찍어도 내년부터 우리나라는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어 국민 누구도 계층간 위화감을 맛보지 않을 것 같고 양극화라는 단어 따위는 국민언어에서 추방해 버려도 무방할 것 같다. 지역적으로도 그렇다. 제주도 교육현장은 세계 제일의 가장 질 좋은 교육을 실시하는 등 교육의 메카로 거듭 나 각지에서 벤치마킹하겠다고 한걸음에 달려올 것만 같다.
그 공약들, 누구 말마따나 정책은 전무하나 이미지는 그럴 듯하다. 마치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는 듯한 그 플랜과 다짐들이 부디 현실이 되기를 고대하지 않는 자,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선거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이미 국정을 맡길 자, 제주교육을 맡길 자를 뽑아 놓은 것처럼 미리 착시현상을 경험하는 이들도 허다할 것이다.
그러나 공약은 공약일 뿐이다. 말로 일방적인 약속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선거가 끝나고 자리에 앉으면, '약속은 깨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말장난을 할지도 모르는, 그저 말로 그린 미래의 청사진일 뿐이다. 그럼으로 후보자들과 주변에서 쏟아내는 말들을 조심하여 새김질할 것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문사들도 심심찮게 지면에 등장하는 이즈음이다. 어떤 이는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는 고시조 한 구절을 강조함으로써 너무 말이 많으면 그거야말로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고 말의 역효과를 경고한다. 어떤 이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구약성경 구절까지 끌어대어 말은 행동의 근원이니 우선 말을 해놓으면 행동은 뒤따르게 마련이라고 말의 진의를 굳이 해석하지 말고 한 말 그대로 받아들여 보라고도 권한다. 그런가 하면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차입하는 이도 있다. 난무하는 말의 성찬에도 참 말이 있어 삶의 모든 것에 고픈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지도 모르니 잘 가려 뽑으면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도 있다고 넌지시 원론적인 언질을 준다. 다 옳다. 있는 그 자리에서 매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내느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신기루처럼 허공에 던져진 이미지가 현실로 옮겨질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내는 예지력을 발휘할 때다. 말은 해서 맛이고 고기는 씹어서 맛이니 세상이 다 우리를 속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는 성선설적인 믿음을 가져 볼 것이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알찬 것,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하는 이를 가려낼 능력을 서로 공유하여 잘 선택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림화 작가·동북아시대위제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