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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칼럼]제주해녀의 불턱과 직접민주주의

칼럼

by 한라산한란 2009. 7. 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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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칼럼09728

 

제주해녀의 불턱과 직접민주주의

한 림 화<작가>

제주해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혼자서 바다에 들어가 물질하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도 제주해녀의 일터가 바다 속이어서 들여다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집단을 이루어 일하게 된 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다른 이유로는 제주해녀 개개인에게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조건 아래 다 함께 작업하되 개인의 능력껏 소득을 올린다는 소위 공정한 소득배분의 원칙에 입각한 공동체의 규정 때문도 있습니다.

제주해녀사회는 일찍이 그들만의 독특한 공동체 사회를 이룩하였습니다. 상잠수, 중잠수, 하잠수 등 개인의 능력과 경력에 따라 계층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계층 간 위계질서가 분명하였습니다. 일찍이 대의 기구인 잠수회도 있었습니다. 1700년대의 기록에서도 잠수회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잠녀안(潛女案)’입니다. 사실 이 문서는 국가에 바칠 조공품 생산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제주해녀를 관리하기 위하여 작성되었던 것입니다.

제주해녀공동체 나름의 정치학이 꽃을 피운 흔적은 그들 공동체를 열고 닫는 ‘불턱’이란 장소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불턱은 제주해녀들 각자가 물질을 하러 모여드는 바닷가의 갯바위 양지뜸 혹은 바위그늘 같은 바람막이에 놓인 화톳불자리를 이릅니다.

일상에서는 할머니, 어머니, 아내, 딸, 며느리, 이모, 고모였던 여성들이 불턱으로 내려 온 순간 제주해녀가 되는 겁니다. 불턱에 모인 제주해녀들은 물질만 한 게 아닙니다. 마을일 개인 일 할 것 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의논하고 토론하여 결론을 짓고 실천에 옮긴,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꾸려갔습니다. 그 불턱에 속한 제주해녀라면 누구에게나 토론 마당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발언권이 주어지고 정해진 바를 이행할 의무와 임무가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백가쟁명(百家爭鳴) 끝에 얻어진 결론에 수긍하지 않은 자 없었습니다. 구성원 간에는 어떤 막힘도, 어떤 일방성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터놓고 토론하는 가운데 ‘먹돌에도 구멍이 뚫어진다’는 진리가 현장성을 확보하여 금새 이해하고 소통되었던 것입니다.

이 분열의 시대에, 막힘없이 소통하고 하나로 통합하며 제주해녀의 전통공동체 사회를 이상적으로 이끌던 불턱 민주주의가 절실히 아쉽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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