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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칼럼]제주도가 지켜야할 것들 8. 범벅에 금 긋기

칼럼

by 한라산한란 2009. 8. 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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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지켜야할 것들 8. 범벅 금 긋기

 

오래된 제주 속담에, “애비아덜 간에도 범벅에 그뭇 긋나”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제 몫을 확실히 설정한다는 의미입니다.

큰 양푼에 온 식솔이 먹을 밥을 퍼 함께 먹던 습관이 옛날 제주사람들의 식문화입니다. 다만 가장인 아버지의 밥은 따로 사발에 담는 집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가장을 공경하는 마음의 표출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다 먹는 범벅은 그 음식의 특성상 함께 먹었습니다. 범벅은 식으면 맛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큰 그릇에 한꺼번에 퍼 담아 식는 속도를 늦추었던 겁니다. 당연히 밥사발 같은 작은 그릇에는 담지 않았습니다.

또 범벅은 정식 식사 보다는 일 중간에 먹는 새참으로 내는 음식이어서 식사예절을 다소 갖추지 않아도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제주의 집집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범벅은 담는 그릇도 일반 음식과는 다소 달랐습니다. 통나무의 가운데를 파서 만든 커다란 함지 그릇 종류로 남박과 도구리가 있었습니다. 남박은 양푼만한 크기여서 주로 범벅 같은 것들을 담는데 이용하였습니다. 그 남박에 한 가득 퍼 담은 범벅에다 식구 수대로 숟가락을 걸쳐놓는 게 범벅상차림의 전부였습니다. 음식을 두고 상하관계라든지 이를 염두에 둔 양의 배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오직 당사자들이 양껏 먹으면 되는 음식상이 범벅남박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밥상머리 예절 따위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그 범벅남박에도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절은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한 덩어리로 되어 하나의 그릇에 담긴 범벅을 공유할 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버지의 몫이 있고 아들의 몫이 엄연히 있음으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남의 몫의 재물을 탐하거나 남의 명예를 훔치는 그런 파렴치한 행동은 용납될 수 없음을 일컫는 격언이기도 합니다.

이 속담을 현재 우리사회에서 근거한다면 어떤 것들이 적용될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남편 혹은 가장의 사회적으로 또는 직업상 부여받은 지위를 그 부인이, 또한 그 일가붙이가 턱없이 공유하여 자신이 그 지위에 있는 양 나대는 경우, 그리고 제주으뜸상호저축은행처럼 고객이 맡긴 돈을 자신들 쌈짓돈처럼 함부로 부실운영하여 큰 폐해를 지역사회 경제운용에 끼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겁니다.

경계가 애매할수록 ‘범벅에 금을 긋듯이’ 분명한 한계를 설정해놓고 이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참된 이시대의 미덕이 아닐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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