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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논단] 제 역할 하기를 생각하다

칼럼

by 한라산한란 2008. 10. 1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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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논단]제 역할 하기를 생각하다


입력날짜 : 2008. 10.16. 00:00:00

삼라만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의무처럼 다 제가 할 역할이 맡겨져 있다.

물론 현대 사회는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애초에 맡겨진 역할과 전혀 다르거나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도록 조작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는 하다. 예컨대, 미국의 우주왕복선중에는 에어버스가 있어서 지상에서의 사람을 운반하는 대형자동차의 개념이 우주를 날아다니는 데 까지 역할의 영역을 넓혔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한창 TV 드라마로 인기를 모으는 외화 가운데 역할의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운 컨셉트로 설정된 '트랜스포머'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일찍이 성의 경계를 넘어 태생적으로 마련된 삶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전혀 다른 영역을 개척한 '트랜스젠더'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미 옛말이 되어 버렸다.

일상생활에서 애용되던 사물의 역할 영역 넓히기는 정말 기상천외하게 나타날 때도 있다. 예전 실내화장실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우리네 이동 변기로 각광을 받아 집마다 한두개씩은 다 가지고 있던 요강의 변형된 쓰임새에서 그런 엿보기가 가능하달까. 역할의 극적인 반전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지만 요강은 예로부터 그 질이 자기, 사기, 놋, 양은에서 스테인리스에 이르기까지 재료도 다양하였다. 이들 재료로 빚어진 요강 중에 극히 적은 수이지만 서양 사람들이 그 역할을 바꿔 놓은 것은 자기 및 사기요강이다. 생김새와 질이 좋고 뚜껑이 있는가 하면 보온과 보냉이 가능하여 우리 요강을 그들의 스프 그릇으로 사용한 이들이 실제로 더러 있었다. 당연히 변기로 사용된 적이 없는 새 것을 그렇게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물에 운명적으로 책임지게 한 고정된 역할은 없는 것이다 라고 변증법적인 논리를 펼친들 하등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아님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제주시 신산공원에 설치된 청자등(靑瓷燈) 두 기를 볼 때마다 그 역할이 무엇일까,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설치된 경위를 적은 안내문을 보아하니 강진 사람들이 제주와의 인연을 높이 기려 그 등들을 제주시에 기증한 것 같다. 강진은 조선 시대에는 '탐진'나루라고 불렀을 정도로 제주에서 육지로 들어가는 배들이 처음으로 가 닿는 포구였다.

그런 인연을 잊지 않고 그 곳의 특산물인 청자기로 등 두 기를 빚어 기증한 강진 사람들의 마음은 곱다 못하여 거룩하게 느껴진다.

등은 불을 밝혀 어둠을 사위는 것이 누가 뭐라고 하여도 첫 번째로 주어진 역할이다. 아니면 혼탁한 세상에 한 줄기 밝은 빛을 상징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인가가 '여기 있노라'는 표시를 할 때 이정표의 역할도 한다. 첫 번째에 해당하는 등의 역할은 여기에서 구태여 지면을 할애하며 역설하지 않아도 다 안다.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한 분이 대낮에도 들고 시정을 방황했다는 그 등의 역할은 두 번째 것에 해당될 터이다. 세 번째에 해당되는 역할을 해내는 것 중의 으뜸은 등대이고 업소를 알리는 네온사인 등도 소소하지만 이에 속한다.

그런데 그 강진청자 등은 제 역할은 커녕 네모 유리상자로 벽을 친 속에 안치되어 주변 두 군데에 설치된 조명시설로부터 도리어 강렬한 빛을 받아 존재를 알리고 있다니, 이는 그 역할의 변고라고 할만 하지 않는가.

 <한림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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