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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추석명절의 귀성풍경

칼럼

by 한라산한란 2017. 10. 2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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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제주] 2017.10.03  

 한림화의 ‘제주 섬 살이 이야기’ 2


                잃어버린 추석명절의 귀성풍경

명절이 코앞에 닥치면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간들 고향에 가고픈 마음앓이를 하게 마련이다.

때문에 귀성의 역사는 헤아릴 수 없는 그리움이 낳은 타향받이 몫이며 그 기나긴 여정의 증표라고 할 만 하다.

제주 섬 사람살이도 예외는 아니어서 설이며 추석에는 귀향한 이들로 마을마다 북적인다.

하지만 어느 집이나 명절풍경이 다 그러하지는 않다. 환고향하지 못한 이의 타향살이 서러움 못지않게 가족을 맞이하지 못한 그 아픈 그리움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아마 모를 터이다.

제주 섬에서는 이때나 그때나 바깥을 보는 경관이 다르지 않는 것이, 너무 외따로 대양 한가운데 홀로 나앉아 보이는 건 오로지 굼실대는 바다 물결 외에는 없다.

예전 1970년대 까지는 명절 전 풍경이 한결 같아서 어쩌다 저 멀리로 지나가는 큰 배라도 보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서서 바라기를 할 정도였다.

오죽 격리되었으면 뱃사람이 말하는 바, 제주에는 그 흔한 바다갈매기도 길을 잃을 만치 정말 외로이 나앉았을까 싶다.

선박이며 비행기가 주류를 이루는 일상의 교통수단이 보편화되기 이전이어서 제주 섬을 떠났다가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았던 섬사람들. 그야말로 귀소본능(歸巢本能, (back)homing instinct)에 기대어 고향에서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소망하기를 평생해도 소원을 이룰까말까, 귀향하여 달콤한 가족 간의 재회를 맛본 이들이 드문 시절이었다.

예외는 있었다. 그것도 한두 사람의 행보가 아니라 집단으로 추석명절에 귀향하는 섬사람 무리가 있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추석 풍경으로 타향에 물질을 갔던 제주해녀들의 귀성길인 ‘잠수뱃길’이었다.

제주해녀사회는 늦어도 음력 삼월 초순이면 ‘육지물질’이라고도 하는 ‘밖이물질’을 떠났다. 이즈음은 이를 두고 ‘출가물질’이라고도 하는데 연구자들이 붙인 용어이니 뭐 다 같은 현상을 두고 일컫는 것이어서 그 뜻에는 변함이 없다.

  

▲ 오조리 여인 10명(사진 자료-제주특별자치도)ⓒ일간제주


제주해녀의 물질나들이는 음력 삼월초순 미역허채 직후부터 팔월 추석 직전까지 농한기를 이용하여 이뤄졌다. 한반도의 온 해안에서부터 일본전역으로, 1945년 광복이전에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으로 사할린으로 중국의 칭다오며 홍콩 등지로도 나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대여섯 달 물질하고 들이는 ‘돈’이 가정, 마을, 제주 섬 경제의 마중물이 되어주었단다.

언제부터 제주해녀들이 그러한 물질나들이를 했는지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일제강점기에는 제주와 일본의 뱃길을 잇던 ‘군대환’을 타고 제주 섬을 떠났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마을포구에서 돛단배를 타고 물질을 갔다고 한다.

어쨌거나 마을마다 물질나들이를 기획하여 꾸리는 전주며 뱃사공이 있어 배 한척에 오르는 인원이 젖먹이 아기와 그 ‘애기어꿰’(baby-sitter)를 합쳐도 10명에서 15명을 넘지 않았다.

  

▲ 물 위에 떠있는 해녀들(사진 자료 -제주특별자치도)ⓒ일간제주


바로 마을 앞바다에서 배에 올라 힘차게 노를 저어 ‘돈 벌러 물질 간’ 할머니, 어머니, 아내, 누이, 언니를 기다리던 그 추석 전 며칠 동안의 기다림이라니, 그 무렵이면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재회의 설렘만이 가득했다. 비록 물질 간 누군가가 전혀 없는 집도 그 들뜬 분위기를 나누었다. 제주 섬은 창조된 그 때로부터 더불어 살아오는 ‘가족공동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기분만 공유하는 건 아니었다. 추석명절에 유용하게 쓰일 물건도 건네졌던 건 매우 당연했다.

귀향한 ‘잠수배’(제주해녀 배)에서는 온갖 귀한 물건들이 하선되곤 했는데, 꽃고무신이며 아랫단에 하얀 띠를 두른 검은 물들인 치마며 치자물이 곱게 든 노랑저고리며 호기롭게 봉황이며 호랑이가 수놓인 할아버지 담배주머니는 덤이었고 온갖 추석빔이 쏟아졌다.

그렇게 벌어온 ‘돈’은 제주 섬을 먹이고 입히고 그리고 후대를 교육하는 학자금으로 쓰여 졌다.

이토록 아름다운 제주 섬의 추석 귀성풍경은 오로지 다가올 명절을 풍성하게 지내고파 가족과 모든 것을 두고 떠나 물질하고 귀향하던 제주해녀의 헌신이 한몫했음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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