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역시 사람에게 달렸다
입력날짜 : 2011. 07.28. 00:00:00
그게 허물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오로지 이미지에 불과한데도 '제주사람 말투는 퉁명스럽고 행동 또한 투박하다'는 지적이 있어온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님을 우리들 제주사람은 안다.
그런 지적이 있은 후에는 의례, 언어와 행동의 가시적인 표현 넘어 심성은 더없이 따뜻하니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들어 본 후에 판단하라는 충고도 서슴잖아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곧 연간 방문객이 1천만 명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예전 제주섬의 미덕처럼 회자되던 삼무(三無)인 대문 없고, 도둑 없고, 거지가 없었음을 주지하는 상황인식은 이제 설득력이 다했는가. 삼무 이미지는 제주섬이 폐쇄사회가 아닌 개방된 사회임을 나타내는 극명한 상징이라고 포효한들 이제 귀 기울이는 이 별로 없는 듯하다.
무뚝뚝한 말투와 표정 뒤에 숨겼다가 때가 되면 그 진가를 발휘하는 다함없는 살가움이 너도 나도 다 한가족처럼 살아가는 제주사회의 생활방식이라는 주장을 하기에는 이 시대의 시간대별 인적교류가 너무 빠르다.
짧으면 당일치기, 길어봐야 고작 며칠 머무는 이들에게 좀 친해져야만 나타나는 제주사람 특유의 가족적 환대 습성이 전달될 여지는 극히 미미한 편이다.
가끔씩 외국에서 손님이 온다. 며칠 전에도 미국에서 이십 대 친족이 난생 처음 제주도를 방문했다. 나와는 삼촌 조카지간이지만 한국인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무늬만 친족관계인 손님이었다. 그가 며칠 동안 섬을 둘러보고 한 말이다. "호텔 종사자만 빼고는 다 무섭게 사람을 대한다."
그의 체험담은 좀 더 실질적이었다. 상점에 들어가 이것저것 물건을 둘러보는데 종업원은 살 것이냐 말 것이냐를 따지는 표정이고 혹시라도 빈손으로 나서면 금방 뒤통수에다 대고 막말을 해대더란다. 식당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조금만 메뉴선택을 주저하면 주문받는 태도에서 여지없이 짜증이 묻어나고, 택시운전기사도 버스 운전자도 손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하더란다.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았는데 한결같이 잔뜩 부어서 어디서 싸움하다가 뛰쳐나온 사람이나 진배없는 모습이라고 표현하면 잘 설명하는지 모르겠다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접받으려는 게 아니라 적어도 손님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해주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의 제주섬 첫 경험이 너무나 부정적인 것 같아 함께 외출을 하였다. 식당에도 가고 가게에서 물건도 사고 매일시장도 구경하였다.
아는 이들을 만나면 처음 제주도를 방문하는 내 조카라는 설명 한 마디에 모두들 환대의 말을 건네고 밝은 웃음과 친절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 나들이 후, 그가 또 장탄식을 늘어놨다. 외부사람 혼자 다닐 때와 제주사람과 함께 했을 때 사람을 대하는 제주사람들 태도가 이토록 다르다면 이건 정말 큰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그에게 내가 설득한다고 한 말은, 제주사람이 외부사람에게 머뭇거릴 수밖에 없고 단번에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대하지 못하는 건 제주섬의 역사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비교적 공평하고 온건한데다 꼭 할 말도 곱씹어 본 후에 비로소 하는 언론인 한 분이 별 트집 잡을 것 없이 쓴 논단에 '댓글'을 단 어느 분의 제주사람들이 얼마나 퉁명스럽고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족속인지를 극명하게 꼬집어 할퀸 걸 보면서, 제주사람으로서 반성할 바 매우 컸다.
그래, 지나치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최상의 예의는 지키자고 다짐하였다. <한림화 작가>